아. 오랜만에 찌릿찌릿하게 즐거웠지.
여느때처럼 주말에 뭘 하면 좋을지 여기저기 둘러다녀보며 컨텐츠를 찾던 평일. 흥미가 가는 전시를 발견했고 미리 인터파크를 통해 예약해두었다. 미세먼지 가득했지만 기온은 따스했던 주말 오후 혼자서 휘적휘적 중앙박물관으로 출발.
어두운 조도에 작품에 맞추어 핀 된 조명. 처음 접하게 되는 두 개의 텍스트부터 집중하기에 딱 좋았다. 최초로 불상을 만들었다는 전설의 주인공 비수갈마천. 그 창조의 신과 같은 마음으로 생명력과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는 작품을 창조해 낸 모든 창작자들.
특히나 좋았던 것 네 가지.
첫번째. 어느 화승의 스튜디오. 불화의 제작 과정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마련된 가상의 공간에서 석정 스님이 불화 제작하시는 모습의 시작을 담아낸 영상. 스튜디오를 일부 재현해 낸 공간 가운데 영상이 방영되고 있어 더욱 몰입하기 좋았다. 벽에 덩그러니 걸린 영상들보다 이질감이 없었기 때문. 새로이 알게 된 불화 제작 과정도 경이로웠지만 영상 너머로 느껴지는 경건함이라고 해야하나. 그 힘이 느껴져 더욱 몰입되었다. 세필로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온 기운을 담아 그려내시는 모습.
두번째. 소원하는 글을 담은 통.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대체 무엇일까. 그것들을 담아내는 또 하나의 물건에 이렇게 아름다운 정성을 들일 일인가. 요즘 혼자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마음(어쩌면 욕심) 인데 비슷한 맥락이 있는 것 같아 기억에 남는다.
세번째. 옛 스님들의 대화를 카톡 메신저 형태로 구현한 것.
두루마리 족자 가득가득 쓰여진 무수한 한자들보다 우리에게 더 친근하게 과거를 소개하는 방법이 좋았다. 불화와 불상을 제작하는 과정에는 담당자 지정부터 자금 수급까지 수 많은 과정이 공존하는데 그 과정들은 스님들 사이의 서찰로 진행되었다고. 그리고 그 과정을 요즘 이해하기 쉽도록 메신저 형태로 구현하여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. 이 날 유난히 소규모 투어를 다니는 어린이 그룹이 많았는데, 그 친구들에게도 더 와닿는 방법이겠지. 다들 박물관 구석구석에 둘러 앉아 뭘 그렇게 열심히 적고 그리는지. ' A스님 안녕하세요 ~' 로 시작해서 'B스님이 퇴장하셨습니다'로 끝나는 대화방. 그리고 모든 문장의 끝에 _()_ 이모티콘이 붙는다. 합장하는 손을 본 뜬 이모티콘 같은데 너무 귀엽네 증말.
네번째.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. 이번 전시에서 가장 띵 - 하게 강렬했다. 전시가 끝나가는 구성이라 어두운 복도를 들어서며 이제 나가면 되려나 ? 했는데 복도 끝 좁은 코너를 향해 도니 넓은 원형의 독립된 공간에 자리하고 있던 삼존좌상. (공간이 주는 힘) 강렬한 핀 조명을 받으며 금빛을 뽐내는 불상에 압도당하는 기분. 정돈 된 표현으로 적었지만 사실 이 날 불상을 보자마자 '이걸 당시에 손으로 만들었다고. 미쳤어' 를 외쳤다. 코너를 돌아 불상에 닿기 전 당시 시대의 사람들이 이 불상을 보며 현재의 우리가 3D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감흥이 있지 않았을까. 라는 텍스트 안내문이 있었는데 정말 격하게 공감한다. 22년도에 와서 앞에 서기만 해도 감동이에요. 금빛 찬란함에 의존해 당장 소원을 빌어야할 것 같습니다. 소장처인 용문사에서 한번도 외부로 한 차례도 이동한 적이 없었으나 337년 만에 외출하여 전시장에 전시된 것이라고 하니 이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전시였다. 사실 불교 신자가 아니라면 이렇게 불상을 가까이 마주하고 서서 몇 십분간 오른쪽 왼쪽 들여다 볼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.

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. 조선의 승려 장인






소원하는 글을 담은 통

소원하는 글을 담은 통

어느 화승의 스튜디오

어느 화승의 스튜디오


<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>(조선 1684, 예천 용문사 소장, 보물)과 <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>(조선 1684, 예천 용문사 소장, 보물)



+ 사유의 방
인스타그램에서 수도 없이 봤던 사유의 방. 누군가 다녀와서 흡사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한 발자국이라도 가까이 다가가 보려던 대학생 배낭 여행 시절이 생각난다는 후기를 남기셨던데. 이 날 이른 오후라 그런지 이미 한 차례 사람들이 빠진 것인지 크게 붐비지 않아 느긋하게 시간을 두고 볼 수 있었다.



국립중앙박물관. 사유의방


반가사유상

반가사유상
+ 역사/미술 시간에 책에서 접했던 칠보무늬 향로이지만 문득 영문으로 Incense Burner 라고 쓰여 있는 것이 유난히 재미있게 다가온 날. 고려의 사람들 인센스 버너에도 이렇게 진심이셨군요.

칠보무늬 향로